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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산군묘

서울 · 도봉구

서울 연산군묘 - 방학동에서 만나는 폐왕의 기록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17길 46 (방학동)

#서울#도봉구#관광지

연산군묘는 조선 10대 연산군(재위 1494∼1506)과 거창군부인 신씨(1476~1537)의 묘이다. 연산군은 9대 성종과 폐비 윤씨의 아들로 태어나 1494년 왕위에 올랐다. 즉위 초에는 성종 대의 평화로움이 그대로 이어졌다. 사치풍조를 잠재우기 위해 구체적인 금지 조항을 만들어 단속하였고, 종묘에 신주를 모시는 제도를 새롭게 정비하였으며 비융사를 설치하여 철갑옷과 무기를 만들어 생산하는 등 국방정책에도 힘을 썼다. 그러나 무오사화(戊午士禍, 성종실록 편찬 중 김일손 등 사림이 훈구파에게 화를 입은 사건으로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원인이 되어 사림이 피해를 본 사건)와 갑자사화(甲子士禍, 생모 폐비윤씨의 사사사건을 이용하여 훈구 및 사림파들이 척신파에게 화를 입은 사건)로 많은 사람을 죽이고, 사화 이후 국정에 관심을 두지 않기 시작하여 사치와 향락으로 조정이 어지러워졌다. 결국 1506년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어 강화도로 유배되었고 그 해에 세상을 떠났다. 거창군부인 신씨는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으나, 1506년 중종반정으로 왕비에서 폐위되었다. 연산군묘는 하나의 곡장 안에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쌍분의 형식으로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서쪽)이 연산군, 오른쪽(동쪽)이 거창군부인의 묘이다. 연산군은 1506년(중종 1) 유배지인 강화 교동에서 세상을 떠나 그곳에 묘가 조성되었다가, 1512년(중종 7) 거창군부인이 중종에게 연산군묘 이장을 요청하여 양주 해촌(현 도봉구 방학동)인 지금의 자리로 묘를 옮겼다. 이후 1537년(중종 32) 거창군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연산군묘 옆에 묘가 조성되었다. 묘에는 문석인 2쌍, 망주석, 장명등, 상석, 향로석, 표석을 배치하였고 묘 근처에는 재실을 두었다.

위치

서울 · 도봉구

문의

02-3494-0370

주차

불가능

운영

[2월~5월/11월~1월] 09:00~18:00 (입장 마감 17:00)[6월~8월] 09:00~18:30 (입장 마감 17:30)[9월~10월] 09:00~17:30 (입장 마감 16:30)

방문 전 읽어보기

서울 연산군묘는 도봉구 방학동 주택가 뒤편에서 조선 왕실의 굴곡진 기록을 만나는 역사 산책지입니다. 조선 10대 연산군과 거창군부인 신씨의 묘가 한 곡장 안에 나란히 자리해, 화려한 왕릉과는 다른 차분한 분위기로 폐위된 왕의 마지막을 보여줍니다.

방문 후기를 보면 방학동 은행나무, 양효공 안맹담 묘역, 북한산둘레길 왕실묘역길과 함께 걷는 코스가 자주 언급됩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설명문을 읽으며 둘러보면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중종반정 같은 조선 전기 사건을 현장에서 이어 떠올리기 좋습니다. 봄 청명제향처럼 지역 문화행사가 열리는 시기도 있습니다.

묘역은 조용한 관람이 어울리는 공간입니다. 대중교통과 도보 이동을 함께 고려하고, 인근 주거지와 문화유산 보호 구역인 만큼 사진 촬영과 관람 동선은 현장 안내를 따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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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어원

서울 연산군묘는 조선 10대 연산군과 거창군부인 신씨가 함께 묻힌 묘역입니다. 1506년 중종반정 뒤 폐위된 왕의 무덤이라 왕릉이 아닌 묘로 불리며, 도봉구 방학동에 남아 있습니다.

세부 안내

입장료

무료

현장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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