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전북 · 정읍시
문의
정읍시 동학유산과 063-539-6911
주차
불가능
운영
상시 개
방문 전 읽어보기
동헌은 조선시대 고을 수령이 업무를 보던 관청입니다. 태인동헌은 조선 중종 때 태인 현감 신잠이 처음 세웠고,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순조 16년인 1816년에 다시 지은 것입니다. 건물 정면에는 고을을 맑고 편안하게 다스리겠다는 뜻의 '청령헌'을 새긴 현판이 걸려 있는데, 안동김씨 세도가이자 문장가로 이름난 김조순의 글씨입니다.
우리나라에 남은 동헌 가운데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꼽힙니다. 내부 공간 구성이 다양해서, 남쪽 전면에 툇간이 일자로 놓이고 그 뒤 오른쪽에 대청, 왼쪽에 온돌이 있습니다. 그 위 북쪽으로 다시 툇간이 있는데 오른쪽 2칸은 대청보다 바닥이 높은 마루이고 나머지는 흙바닥입니다.
지을 때의 이야기도 전합니다. 목수가 현감에게 천 냥이면 다 짓겠다고 시작해 놓고 천 냥이 부족하다 하고, 또 천 냥이 부족하다 해서 결국 삼천 냥이 들었다고 합니다. 까닭을 묻자 도편수는 처음부터 삼천 냥이 든다고 하면 동헌을 짓지 않았을 테고 그러면 자기 기술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 답했다고 전해집니다.
태인현 지도에 따르면 동헌 앞에 연못이 있었다는데 지금도 조그마한 연못이 남아 있습니다. 연중무휴 상시 개방이지만 주차는 불가능합니다. 주변에는 피향정과 태인향교, 서현사지, 신잠비가 있습니다.
역사 & 어원
태인동헌 정면에 걸린 '청령헌' 현판은 고을을 맑고 편안하게 다스리겠다는 뜻을 담았으며, 안동김씨 세도가이자 문장가인 김조순의 글씨입니다. 조선 중종 때 태인 현감 신잠이 처음 세웠고 현재 건물은 순조 16년(1816)에 중건한 것으로, 국내에 남은 동헌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사례로 꼽힙니다.
자주 묻는 질문
주차할 수 있나요?
주차는 불가능합니다. 연중무휴 상시 개방입니다.
'청령헌' 현판은 무슨 뜻인가요?
고을을 맑고 편안하게 다스리겠다는 뜻입니다. 안동김씨 세도가이자 문장가로 유명한 김조순이 쓴 글씨입니다.
삼천 냥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처음 동헌을 지을 때 목수가 현감에게 천 냥이면 다 지을 수 있다고 하고 시작한 뒤, 천 냥이 부족하다고 하고 또 천 냥이 부족하다고 해 결국 삼천 냥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묻자 도편수는 처음부터 삼천 냥이 든다고 하면 동헌을 짓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자신의 기술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 답했다고 전해집니다.
언제 지어진 건물인가요?
조선 중종 때 태인 현감 신잠이 처음 세웠고, 현재 건물은 순조 16년인 1816년에 다시 세운 것입니다.
주변에 함께 볼 곳이 있나요?
피향정과 태인향교, 서현사지, 신잠비가 주변 관광지로 함께 둘러볼 만합니다.
세부 안내
소개
동헌은 조선 시대 고을 수령이 업무를 보던 관청이다. 태인동헌은 조선 중종 때 태인 현감 신잠이 처음 세웠으며, 현재 건물은 순조 16년(1816)에 다시 세운 것이다. 건물 정면에는 고을을 맑고 편안하게 다스리겠다는 뜻의 청령헌을 새긴 현판이 걸려있다. 현판은 안동김씨 세도가이자 문장가로 유명한 김조순이 쓴 글씨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동헌 건물 중에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건물 내부의 공간구성이 다양하다. 남쪽 전면에는 툇간이 일자로 있고, 그 뒤에 오른쪽으로 대청이 있으며, 왼쪽에는 온돌이 있다. 그 위에 다시 북쪽으로 툇간이 있는데, 이 툇간의 오른쪽 2칸은 대청보다 바닥이 높은 마루이며 나머지는 흙바닥으로 되어 있는 구조이다. 처음 동헌을 지을 때 목수가 현감에게 천냥이면 다 지을 수 있다고 시작을 한 뒤 일천냥이 부족하다고 하였다. 그 뒤 또 천냥이 부족하다고 하여 결국 삼천냥이 들었다 한다. 그 이유를 물으니 도편수 말하기를 처음으로 삼천냥이 든다고 하면, 그 동헌을 짓지 않을 것이므로, 목수가 자신의 절묘한 기술을 발휘할 기회를 얻기 위하여, 거짓말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태인현 지도에 의하면, 동헌 앞에 연못이 있었다는데 지금도 조그마한 연못이 남아 있다. 주변 관광지는 피향정, 태인향교, 서현사지, 신잠비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