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대구 · 달성군
문의
053-631-8686
주차
가능
운영
상시 개방 ※ 주민들이 거주하므로 관람 시 주의
방문 전 읽어보기
인흥마을은 대구 달성군 화원읍에 있는 남평문씨 집성촌으로, 정식 이름은 남평문씨 본리세거지입니다.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마을인데, 자연히 생긴 마을이 아니라는 점이 다릅니다. 18세손 문경호가 문씨만의 마을을 만들겠다고 작정하고 터를 잡아 새로 연 곳입니다.
자리를 고른 방식도 그렇습니다. 고려 때 큰 절이던 인흥사가 있던 터를 골랐고, 마을 이름도 그 절에서 왔습니다. 지금도 마을 어귀에 인흥사지 석탑이 남아 있습니다. 1820년 무렵 재실 용호재를 처음 세운 뒤 1800년대 후반부터 저택이 들어섰고, 초가로 시작해 100년에 걸쳐 지금의 모습이 됐습니다. 기와집 70여 채가 흐트러짐 없이 줄지어 선 배치가 이 마을의 인상을 만듭니다.
건물 하나하나에 쓰임이 있습니다. 광거당은 문중 자제들이 학문을 닦던 곳이고, 인수문고는 문중 서고로 1만여 권을 갖췄습니다. 토담길을 따라 걸으면 수봉정사와 수백당이 이어집니다. 입장료와 주차료는 없습니다. 봄에는 홍매화와 백매화, 여름에는 담을 타고 흐르는 능소화와 연못의 연꽃으로 계절마다 찾는 이유가 달라집니다. 비슬산둘레길 1구간이 이 마을에서 시작합니다.
역사 & 어원
남평문씨의 중시조로 알려진 삼우당 문익점의 후손이 대구에 들어온 것은 500년쯤 전으로 전해집니다. 인흥에 자리를 잡은 것은 18세손 인산재 문경호(1812~1874) 때이고, 그가 고려의 큰 절 인흥사가 있던 자리를 골라 문중 마을을 새로 열었습니다. 세거지에 처음 세운 건물은 1820년 전후의 재실 용호재로 지금 광거당이 있는 자리입니다. 건축 연대는 200년이 채 되지 않지만 영남 지방 양반 가옥의 틀을 지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입장료가 있나요?
없습니다. 주차료도 받지 않습니다. 내비게이션에는 남평문씨본리세거지나 인흥마을 주차장으로 검색하면 됩니다.
일반 한옥마을과 무엇이 다른가요?
저절로 형성된 마을이 아니라 한 문중이 계획해서 만든 마을입니다. 기와집 70여 채가 일정한 간격으로 정연하게 배치돼 있어 골목의 인상이 다른 전통마을과 다릅니다.
인수문고가 무엇인가요?
문중이 세운 서고입니다. 1만여 권을 소장해 문중의 정신적 중심 노릇을 해 왔습니다. 학문을 닦던 광거당과 함께 이 마을의 성격을 보여 주는 건물입니다.
언제 가면 좋은가요?
봄에는 홍매화와 백매화가 피고 여름에는 담을 타고 흐르는 능소화와 연못의 연꽃이 볼 만합니다. 계절마다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이 실제로 사나요?
지금도 문중 사람들이 거주하는 마을입니다. 개방된 구역과 살림집이 섞여 있으니 담 안쪽을 함부로 들여다보지 않는 배려가 필요합니다.
세부 안내
소개
남평 문 씨의 중시조로 알려진 삼우당(三憂堂) 문익점(文益漸)의 후손이 대구에 입향한 것은 대체로 500년 전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이곳 인흥에 자리를 잡은 것은 그의 18 세손인 인산재(仁山齋) 문경호(文敬鎬, 1812~1874) 때이다. 그는 문 씨만의 마을을 만들 것을 계획하고 원래 고려의 대찰(大刹)인 인흥사가 있었던 자리에 터를 잡아 오늘의 인흥마을을 새로 열었다고 한다. 세거지에 최초로 건립한 건물은 1820년을 전후해서 지은 재실 용호재(龍湖齋)로 현재 광거당이 있는 곳이다. 저택이 들어선 것은 1800년대 후반으로 처음에는 초가로 시작했으나 그 후 100년에 걸쳐 지금의 세거지가 형성되었다. 현재 70여 채의 기와집이 한울 안에 정연히 들어서 있는 이 마을은 건축연대가 200년 미만이지만 전통적인 영남 지방 양반 가옥의 틀을 지키고 있으며 세거지 구성과 주위 경관의 조화는 어느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마을이라 할 수 있다.


